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 차원전환의 장대한 서사를 담은 '폰티스 코드' 출간

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
2025-09-20
조회수 70

복음이 지닌 경이로움과 장엄함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가?
영혼을 깨우는 깊은 영성은 반드시 개인과 공동체, 세계 변혁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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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글] 


Fontis, 끝없이 샘솟는 '근원적 현재‘와 만나다.

복음이 증언하는 차원을 달리하는 삶, 우리는 어떻게 그 길에 들어설 수 있는가.

 

“삶은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직선이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이 익숙히 알던 세계에서 더 이상 숨쉬기 어려운 어떤 순간과 마주한다. 낯익은 가치들이 작동하지 않고, 익숙한 언어들이 입을 막고, 매일 반복되던 감정들이 스스로 균열을 내며 무언가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삶은 우리를 조용히 다른 방향으로 밀어 넣는다. (...) 이 책은 삶의 전환을 다루기 위한 영성 형성의 여정을 다룬다. 이는 삶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존재의 의미가 다시 짜이고, 시간과 관계, 고통과 희망의 구조가 새롭게 얽히는 그 깊은 전환의 자리로 초대이다. 이 여정은 단순한 선택이나 변화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다른 리듬을 가지고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는 경험이 될 것이다.” ― 본문 15-16쪽 〈프롤로그, 삶은 어떻게 차원을 달리하는가〉 중에서


성서는 단지 종교적 경전이 아니라 근원에 대한 위대한 기억의 저장소이자 ‘삶의 전환을 살아낸 존재들의 서사’다. 아브라함의 떠남, 모세의 부름, 시편 기자의 내면 고백, 예언자들의 절망과 희망, 예수의 침묵과 부활 ̄이 모든 장면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유력의 질서, 통념, 상식을 넘어서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이행하는 사건들을 다룬다. 그런의미에서 성서의 서사 안에는 우리 안의 고유한 전환의 감각을 일깨우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인간은 단지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부름을 듣고 응답하는 존재, 즉 ‘차원을 열 수 있는 존재’라는 선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복음이 증언하는 차원을 달리하는 삶, 태초부터 샘솟는 근원의 샘과 맞닿아 살아내는 창조적 삶으로 인도하며, 우리는 그 초대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책, 《폰티스코드: 차원 전환과 유무용영 힘의 구조》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거대한 응답이자, 복음의 근원을 향한 가장 따뜻한 안내서다. 저자는 “삶은 어떻게 차원을 달리하는가”라는 단 하나의 물음을 붙들고, 그 길을 복음이 증언하는 전환과 ‘근원적 현재(Fontis)’와의 만남 속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그는 말한다. 복음은 과거의 기록을 되풀이하는 교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도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 삶을 다시 배열하며, 새로운 창조의 리듬 속으로 초대하는 살아 있는 음성이라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폰티스(Fontis)’는 라틴어로 ‘끊임없이 샘솟는 근원’을 뜻하는 이 말로, 바로 이러한 도전을 함축하고 있다. 단순한 물리적 샘터가 아니라 존재가 솟아나는 근원적 현재, 삶 속에서 계속되는 여러가지 부침과 고통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새롭게 생명을 낳는 근원적 관계 구조. 《폰티스코드》는 이 샘으로 독자를 초대하며, 닫힌 차원을 넘어서는 삶, 다시 깨어나는 삶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

 

‘마당’이라는 차원 무대와 네 힘의 역동

평면의 한계를 넘어, 무의 틈에서 도래하는 차원의 접속면을 주목하라!


“차원이 갈라지는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언어화할 수 없는 탄식과 진정한 갈망에서 터져 나오는 탄원의 소리이다. 기존의 정체성, 언어, 감정, 구조만으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때, 기존의 유력화된 구조가 유효하지 않음을 경험하며 새로운 가능성의 장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 순간은 그 자체로 방향성을 가지지 않으며 오히려 혼란과 침묵, 정체와 공허가 더욱 깊어져 구원자의 도래를 기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을 향한 탄원은 존재가 더는 자기 힘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자각할 때 열린다. 유의 구조 안에서 쌓여온 억압과 고통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비로소 내면 깊은 곳에서 초월적 타자를 향한 방향성이 열린다. 이 탄원은 단순한 도움 요청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을 향한 감각의 각성이며, 존재가 이전의 한계를 초과하여 ‘무’를 수용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영적 신호다. 탄원 없이는 다음 마당도, 새로운 질서도 결코 도래하지 않는다.” - 본문 132쪽 <유, 던져진 세계의 불안과 주름> 중에서


이 책은 ‘마당(場)’이라는 독창적 은유를 중심으로, 존재를 움직이는 네 힘 ̄유(有)·무(無)·용(用)·영(0) ̄이 서로 교차하며 빚어내는 차원 전환의 드라마를 장대한 서사로 풀어낸다. 시몬 베유가 『중력과 은총』에서 말했듯, “인간 존재의 심연에서 나타나는 신의 목소리나 은총은 사회의 기능적 질서 바깥, 곧 틈과 무능, 비효율의 자리에서만 가능하다.” 저자는 이 통찰을 다시 가로지르며 되묻는다. 그의 자리가 어떻게 근원의 차원과 공명할 수 있을지를. 그 해답을 추적하기 위해 불러온 은유가 바로 한국적 사유의 심장부에서 길어 올린 ‘마당(場)’이다. 마당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네 힘이 맞부딪히며 차원이 접속·전환되는 차원 전이의 무대다. 이곳에서 유(有)는 중력과 좌표를, 무(無)는 틈과 잠재성을, 용(用)은 흐름과 자기조직화를, 영(0)은 전체를 조율하는 통찰을 담당한다. 김리아는 마당에서 펼쳐지는 네 차원의 역동을 통해 물질과 의미, 관계와 시간, 고통과 희망이 새롭게 배열되는 차원 전환의 구체적 조건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1부, 서설과 고백에서는 근원으로부터의 부름과 그에 응답하는 영혼의 떨림을 드러내며, 존재를 일깨우는 첫 길목의 문을 연다. 2부, 유(有)의 장에서는 마당을 감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 갇혀 있는 존재의 불안과 고착을 비추고, 3부, 무(無)의 장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에 놓인 무의 차원을 새롭게 드러내며, 무의 잠재성 안에서 이뤄지는 일치의 상응각도야말로 창조와 구속의 역사가 솟구쳐 오르는 ‘차원의 접속면’임을 밝혀낸다. 4부, 용(用)의 장에서는 이 무의 틈을 타고 흘러드는 힘이 창발적으로 자기조직화되어 관계와 공동체를 살아 있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5부 영(0)의 장은 네 힘의 순환이 근원적 인간과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로 수렴되며, 빛과 어둠을 가르며 도래하는 새로운 창조의 미래를 밝힌다.


저자는 고상한 전문용어의 장벽을 세우기보다, 독자와 마주 앉아 차를 건네듯 대화의 문체로 안내한다. 갇힌 자기 회로와 에코 챔버, 확신에 찬 무지의 시대를 진단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룰과 에너지’가 삶의 장(場)을 어떻게 뒤집는지, 욕망·자기부정·성장·수동성 같은 오래된 주제들이 차원 전환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새 얼굴을 얻는지 차근차근 풀어낸다. 모세의 떨기나무, ‘호랑이 앞의 작은 개’ 같은 서사적 장면과, “이토록 위대한 무”로 수렴하는 신학적 통찰이 교차하며, 개념은 생생한 이야기로, 이야기는 다시 구조적 통찰로 되돌아온다. 이 장대한 여정 속에서 독자는 깨닫게 된다. 차원 전환은 먼곳의 신비가 아니라 근원적 현재(Fontis)의 사건이며, “지금, 여기의 틈”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우리의 삶과 공동체는 여전히 그 샘과 연결되어, 사랑과 일치의 질서 안에서 다시 배열될 수 있음을. 《폰티스코드》는 바로 그 전환의 길로 독자를 초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갈망의 차원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과 연합하는가.

성서, 신비 신학, 현상학, 현대물리학을 아우르는 한 편의 대서사시.


“태초의 창조와 무의 잠재성을 단순한 기원이나 시간적 서열이라는 인과적 틀로 해석하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 신적 창조는 단순한 넘침만이 아니다. 근원적 내어줌과 이를 온전히 수동적으로 받아내 태초의 움브가 있다. (...) 그것은 실존적으로는 죽음을 통과한 부활의 사건이며 빛과 어둠의 관계에서는 저항과 대립을 의미하며 생명의 법이 사망의 법을 무화시키고 다스리는 구조를 동반한다. 무는 그 자체로 중립적인 여백이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빛의 계보가 교차하는 접속과 대립의 장이다. 성서에 나타난 출애굽 사건, 요한복음의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했다’(요 1:5)라는 선언, 로마서 7-8장에서 나타나는 바울의 전환은 모두 이 무의 장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투쟁과 분리, 재탄생의 도래 구조를 담고 있다.“- 본문 205쪽 <무, 모든 것의 기원이자 분기점> 중에서


한편, 차원 전환의 중심에는 빛과 어둠의 갈라지는 임계점이 있다. 마당에서 네 힘의 역동이 교차하듯, 우리네 삶의 자리에서도 저항과 대립, 투쟁과 갈망의 역사가 반복된다. 성서가 말하는 출애굽 사건의 ‘예외상태’, 광야에서의 멈춤과 무위,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린 집단의식의 공진 둥은 모두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반복되는 전환의 드라마를 실상으로 드러낸다. 저자가 ‘무의 차원’을 드러내며 ‘빛과 어둠의 지향성’을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근원적 내어줌을 온전히 받아낸 태초의 움브로서의 무 ̄그것은 저자에게 있어, 단순히 기원적 시점이나 시간적 서열에 갇힌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두 잠재성이 맞부딪히는 세계, 곧 근원의 내어줌과 그 수용이 교차하며 창조가 솟아오르는 장이며, 동시에 어둠의 저항과 대립이 빛의 계보와 부딪히는 격전의 장이다.


이 드라마를 해명하기 위해 저자는 경계를 넘나드는 방대한 사유의 차원을 가로지른다. 에크하르트의 신비 신학,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과 끈 이론, 하이데거와 들뢰즈의 사유, 현상학의 지평과 마리옹의 “포화현상”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각 전통의 원전과 사유를 직접 탐구하며, 방대한 각주와 문헌을 통해 치밀하게 독자에게 길을 놓는다. 75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서술 속에서 한쪽에서는 동서의 사유를 ‘무의 장’에서 재통합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물리학의 재발견을 통해 ‘영-무-용-유’의 구조를 차원의 관점으로 상상하도록 돕는다. 의식의 차원을 다루는 현상학의 분석은 우리의 삶에서 ‘관찰자’의 근본적인 층위를 밝혀주고, 영성의 고백은 승복(surrender)의 체험을 끝내 현재형으로 불러낸다. 그 속에서 우리 삶에도 공명하는 무의 차원이 단순한 해체의 심연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지향성에 따라 달라지는 연합의 자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기도는 바로 근원적 차원의 하나님께 자신을 맞추는 주파수다. 새로운 창조와 구속은 그렇게 ‘지금, 여기’서 우리의 삶을 관통하며 말을 건넨다.

 

흔들림의 끝에서, 여전히 근원을 갈망하는 이들을 위하여

삶의 전환과 공동체, 미래를 향한 장구하고도 가장 따뜻한 안내서.


“공동체는 도강과 할례의 공동 기억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이들은 애굽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노예도 자기 판단과 욕정대로 움직이던 기만적 주체도 아니다. 생명의 법과 사망의 법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혼란한 존재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영적 연합을 반대하는 아무런 장애도 욕망에 따른 생성도 작용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 자체로 온전한 일치 안에 이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내외적 영적 씨름을 함께 통과하면서 ‘집단적 정화’가 경험된 이들이라는 것이다. (...)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이러한 집단무의식이 정화된 영성 공동체에서 찾고자 한다. 이 공동체란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가장 현재적인 곳이다. 그들은 중심을 공유하면서도 경계에 있는 이, 주변에 있는 이들도 창조적 변화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연결된 흐름으로 움직이는 살아 있는 유기체다. 그들은 자연히 영적 친밀성과 질서, 자율성과 공동 책임, 기도와 실천이 균형을 이루며 발전한다. 이 여정은 처음부터 계획되어 있었으며 그 초대에 응답하는 이들을 부르고 있다.” ― 본문 643-647쪽 〈영, 근원적 인간, 근원적 시대를 바라보며〉 중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동체의 미래, 이것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다. 무의 장을 거쳐 탄생한 공동체, 그것은 곧 애굽의 질서를 멈추게 하고, 광야에서 무위와 경청을 배우며, 여리고의 성벽을 무너뜨린 집단적 일치와 공진의 힘을 이어받은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자기실현을 넘어, 세계와 타자를 향한 연민과 소명의 일을 향해 새롭게 번혁된다. 유는 더이상 고착된 형상이 아니라 영과 말씀, 사랑으로 다시 직조되어, 역사 한복판에서 새로운 현실을 빚는다.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기다려야 할 미래가 아니라, 사랑과 일치 속에서 이미 역사 속에 침투한 은총의 표지가 된다.


이렇듯 《폰티스코드》는 흔들림의 끝에서 여전히 근원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던져지는 초대장이다. 이 책의 초대를 받는 남은 자들, 그들은 더 이상 과거를 사는 자가 아니며, 자기 욕망에 따라 흔들리는 기만적 주체도 아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근원을 갈망하며, 서로를 비추는 등불로 서 있는 자들이다. 이 연합은 지금도 역사의 한복판에서 증인의 공동체로 서 있으며, 온전한 일치와 변혁의 날이 도래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만유의 주 안에서 새로운 유를 형상화하는 길, 이 책은 그 여정을 위한 가장 장구하면서도 따뜻한 안내서이며, 지금도 우리를 그 초대의 자리로 부르고 있다.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자들,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자 하는 이들, 진리로 깨어나기를 원하는 이들, 새로운 삶의 문화를 세우는 그리스도의 군사들 ̄곧 남은 자들에게 《폰티스코드》는 신뢰할 만한 지적·영적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 책은 오프라인 서점 및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 링크 

갓피플 몰 : https://mall.godpeople.com/?G=9791198048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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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원 개요

신의 정원은 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 산하 출판사로 시대적 대안을 탐구하고 생명을 살리는 통합적사유와 전환을 위한 다양한 도서를 펴내는 출판사입니다. 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은 예리한 지성과 감수성, 실천력 있는 지도자들을 양성하며, 솔라리움(내면의 빛과 화두찾기)과 스콜레(전체성과 집단지성)라는 두 방법론의 기둥으로 운영됩니다. 아카데미 과정은 영적기반(깨어나기ㆍ경청과 해석ㆍ기독교세계관)을 중심으로, 4개의 전공분야(통전적 영성과 해석, 치유ㆍ코칭ㆍ문화, 사회적 선교, 영․유아 교육)가 있습니다. 이미 학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이들이 다양한 세미나와 국제포럼 등을 통해 자신의 삶과 경험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여 삶을 전환하고 미래사회와 교회를 준비하도록 교육하는 준대학원 과정입니다.

 

연락처 : 폰티스 후마니타스 연구원 / 전화 : 02-2644-5121 (내선번호 1번)

이메일 : hyunchul@fonti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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